서울에서의 대중교통이란 시민들의 삶과는 뗄레야 뗄수 없는 그런 것이지만,
지방에서는 아마도 서울에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버스는 왠지 사람냄새가 난다기 보다는, 정해진 시각에 왔다 사람을 태우고는 종점을 향해 달리는,
말 그대로 '교통수단'의 느낌이 강한데 반해,
지방의 버스는 왠지 모를 '사람냄새'가 난다.
이 곳에서도 이런 나의 느낌은 영 틀리지 않았음을 매일매일 버스를 타면서 느끼고 있다.
내가 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만 다니는 시내-시외 구간을 왕복하는 버스다.
한 시간에 한 대 밖에 없기 때문에, 정해진 시각에 정류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각보다 적어도 10분 정도는 먼저 나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나 안타까운 것은 신호등 때문에 또는 느린 걸음때문에 눈 앞에 버스를 두고도 놓치게 되는 경우일 것인데,
적어도 이 곳에서 그런 걱정은 없는 듯 하다.
특히나 어르신들이 많은 지방에서, 버스는 어르신들이 무사히 타고 내릴 동안은,
운전기사분이나 타고 있는 승객들이나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대 불평이나 불만의 소리가 없다.
말린고추나 커다란 짐을 싣고 어르신이 오르실 경우에는 기사분께서 직접 짐을 실어드리기도 하고,
서울에 비해 젊은이들의 자리양보도 상당히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서울에서는 할 수 없는 재미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얼마전 '가을장마'때, 버스에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였다.
비가 엄청나게 오기에 두 세 정거장을 지나왔건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배차시간 때문인지 기점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신 기사님께서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나에게 물어보셨다.
"아저씨, 담배 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씀드리자, 기사 아저씨께서는 에어컨을 바로 끄고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우리 딱 담배 한대만 피면서 갑시다!!"
그리고는 정류장에 잠시 정차한 사이 담배에 불을 붙히시고는 운전을 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버스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는 기사분을 따라 같이 담배에 불을 붙혔다.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 탐스럽게 익어가는 고개 숙인 황금색의 벼, 그 사이를 시원스럽게 질주하던 211-2번 버스.
담배 한 대를 피울 정도의 약 3-4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랄까 정말 색다른 경험이라고나 할까?
오늘은 위와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내가 타는 종점에서 대부분 기사님들은 10분 정도 쉬시면서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커피 한잔 하시고 그런 시간을 보내신다.
그런데 이 기사님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출발을 하려고 하셨다. 그리고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줄 테니 다른 버스를 타라신다.
이유를 여쭈어보니, 가스가 없어서 바로 충전소로 들어가야 한다고-_-
내가 내리는 곳이 충전소를 가는 중간이기 때문에 기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좀 태워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못 이기는 척 하시던 기사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냥 돈 내고 타지 말라고 하시며 차를 출발시키셨다.
정규노선이 아닌 비정규노선-_-을 달리는 시내버스.
나는 시내까지 들어오는 20여분 남짓, 기사님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력이 25년이 넘으신 기사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은 참으로 삶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부럽다고 하시면서 크게 웃으셨다.
이윽고 내가 내려야할 정류장, 기사님은 버스정류장이 아닌 횡단보도에 정차시키시고는 언넝 내리라고 하시며
다음에 또 보자고 하셨다.
물론, 서울에서도 그리고 대도시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일 일수도 있겠지만,
왠지 잠시 머무르다 떠나갈 도시에서 이런 색다르면서 따뜻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이 아닐까 한다.